|
2006년 10월 29일
이제 와서 뭔가 바뀌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지금 내가 하는 것도 전부 어쩌면 헛수고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단 하나,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뭐라도 하고 있다. 뭐라도 하고 있다. 뭐라도 하고 싶다. 그게 공부던, 연애던, 아니면 개소리던, 여행이던, 게임이던.
언제 이정도로 내가 타락했던가. 그러나 이 초조함만은 어쩔 수 없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있겠지. 넘어서지 못한다면, 그리고 넘어선다면 약진. 앞으로 한 발. 그리고 다시 달릴 수 있겠지. 그러나 불안하다.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럴 기회라도 있을까? 나는 아직 너무 어리다. 그런데 요즘 가끔 드는 생각들 중엔 나는 현재에 귀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난 사실 미래가 아득히 불안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불안하지 않다고 애써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것이 있다. 아니 가끔이 아니라 자주. 그래서 현재에 귀착되고 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사실, 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조장하는 것이겠지만. 언젠가 가졌던 불안감이 현실화되고 있다. 애써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를 수 있을 때 날개가 굳어버려 날지 못하는 나. 녹슬고 비대해진 몸으로 어딜 가겠다는 거냐, 이 멍청아. 미칠 것 같다. 빛은 보이지 않고 끝없는 어둠 속을 찾아 헤멘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 지난 날의 행동들이 전부 족쇄가 되어 나를 얽는다. 오만, 자만, 그리고 나태와 자학. 미치겠다. 낙관이 아니라 우유부단함이었다.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일진대.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이럴 바엔 차라리 대학 따위 때려쳐 버릴까. 그냥 지방 전문대를 나와서 그렇고 그런 프로그래머로 살다가 가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2006년 07월 31일
요즘 유명 작가의 초기작을 읽고 있다. 물론 순문학이나 예술 문학 쪽은 아니고, 환상 문학, '팬터지'다. 일명 '환타지 붐'─이 말에는 일종의 경멸감마저 내포되어 있기에 굳이 팬터지로 칭하지 않았다─이 있기 전에 인기를 누렸던 작품들. 이중에는 명작이라 불리우면서, 다시는 있지 못할 팬터지의 높은 문학적 부흥을 이룬 작품들도 있다. 예를 들면 이영도나 전민희 같은 중견 작가─이들을 중견 작가로 불러야 하는 한국 환상 문학의 현실이 암담할 뿐이다─말이다. 이들의 초기작들, 예를 들면 세월의 돌, 드래곤 라자,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팬터지'라는 타이틀을 안 달고 나왔다가 창고에서 소각처리되기까지 한 비운의 작품. 최근에는 팔란티어 살인사건인가 하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등을 살펴보면 무언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그 작가들의 후기작과는 비교도 안 되게 서투른 문체로(이영도의 경우엔 그 차이가 미묘하지만) 개성있는, 나름대로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D&D라는 룰에 기초해 만들어진 세계도 있고, 톨킨의 세계를 가져온 것도 있고, 그 모든 것들을 적당히 융합해 만들어진 세계도 있지만, 그 세계에서 공통되는 모든 점은 결국 그 세계가 그 작품을 일궈내기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은 현실에서의 일탈을 추구해 환상문학이라는 목표를 상정한 한국의 여러 초중고교생, 거기에 더해서 백수들과는 상반되는 것으로써, 그들(도피자들)이 만들어낸 세계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은 소드 앤 소서리(혹은 소드 앤 매직)이라 불리우는 팬터지의 장르적 한계를 넘지 못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한 작가들이 쓰는 환상 문학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들 형태는 미묘하게 다르지만 에픽 팬터지라는 하나의 장르─판타지 역시 장르가 있다. 오컬트, 에픽, 소드 앤 소서리, 도시 팬터지, 동물 팬터지, 페어리 테일 등 그 종류만 해도 수십개가 넘는다─로 귀결된다. 옛날 라니안(팬터지 사이트)이 번영했던 시절, 아에올로시스라는 분에 의해 알게 된 사실인데, 소드 앤 소서리와 에픽 사이에는 그 무엇으로도 메꿀 수 없는 크나큰 갭이 있다. 소드 앤 소서리에서의 전투는 전투를 위한 전투다. 설사 그 전투에 어떠한 목표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순히 그 전투에서의 목표일 뿐(예를 들면 이 전투에서 이기면 저 미녀를 얻는다!는 식의 마초이즘적 목표라던가) 결과적으로 그 전투를 넘어선 것의 목표는 되지 못한다. 고로 소드 앤 소서리는 '전투 모음집'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치장을 해도 그것은 결국엔 일종의 대전게임인 것이다. (A가 공격했다! 3만의 데미지를 입었다! B는 반격했다! A는 232만의 데미지를 입었다! B(이)가 승리했습니다! B(은)는 3000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누구의 말을 빌리자면 정말 감정의 과잉, 숭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야기라는 것은 서사성을 지녀야 한다. 에픽 팬터지는 이런 점에서 그 주제성과 무게를 지니게 된다. 에픽 팬터지에서의 전투는 소드 앤 소서리에서의 전투와 다르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하나의 목적 혹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중간 단계고 심지어는 에픽 팬터지에서는 세계 역시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같은 이야기를 표현한다 해도 '굳이' 환상 문학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내가 느끼는 바로서는…현재 에픽 팬터지라고 할 수 있는 팬터지 작품은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최근에 본 건 피를 마시는 새(이영도 作)정도? 또 홍정훈 같은 경우엔 '그나마 질 높은' 소드 앤 소서리를 쓰는 작가지만 에픽 팬터지 작가는 아니다. 전민희 역시 교묘하게 포장된 상업주의를 안에 내포시켜(독자들에게 흥미 있을만한 요소를 이리저리 안배해놓고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를 진행하는 식이다) 에픽 팬터지 작가로써의 의미를 잃었다. 그 외에는 논할 가치조차 없다. 오오, 말초적 쾌락의 숭배여! 이것을 상업주의의 승리라고 해야 할지 무어라 해야 할지 가슴만 답답하다. |
ABOUT
카테고리
이전블로그
이글루링크
최근 등록된 덧글
4층의 격차를 뛰어넘고 돌을 던..
by 이일주 at 08/16 은근슬쩍 공주님 묘사는 위험. =.. by 이일주 at 08/14 ...약간 짧은 기분이 드는걸. by 이일주 at 08/08 |